세계 19개국 설문… 30%가 "안 맞거나, 망설일 것"
길어진 코로나 시국에 지친 사람들은 '백신' 개발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저명한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당장 백신이 출시되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설문한 결과, 약 30%는 "백신을 맞지 않거나, 망설일 것"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백신이 최대의 효용을 보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접종해야 하지만, 독감 백신에 관한 논란도 이어지며 백신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
"정부 신뢰도 낮을수록, 백신 접종 거부할 것"
스페인, 미국, 영국 등 연구자들이 모인 공동 연구팀은 코로나19 피해를 본 19개국 만 18세 이상 성인 1만3426명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 중 14%는 "백신 접종을 거부하겠다"고 답했고, 또 다른 14%는 "백신 접종을 망설일 것 같다"고 답했다. 연구에 참여한 하이디 라슨 박사는 "이를 전체 인구에 대입하면 수천 명이 백신을 거부할 우려가 있다"며 "백신에 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앞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답자들이 백신을 거부하려는 이유는 뭘까. 연구팀은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백신을 맞고자 하는 의지가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국에서는 응답자의 88%가 검증된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답한 반면, 미국은 75%로 낮았으며, 러시아는 55%로 가장 낮았다. 연구에 참여한 제프리 나사로 교수는 "백신을 주저하는 문제는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한편 소득이 높을수록, 나이가 고령일수록 예방 접종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백신 효과 있으려면 '정부·백신 신뢰도' 높여야
최근에는 백신 신뢰도가 낮아질 만한 몇 가지 이슈가 있었다. 해외에서는 러시아 '스푸트니크 V' 백신의 경우다. 보통 백신은 3차 임상까지 진행한 후 공식 등록되는데, 스푸트니크 V는 러시아에서 3차를 건너뛴 채 백신을 우선 등록하고 양산을 시작했다. 이후 모스크바 시민 4만 명을 대상으로 3차 임상을 진행했고, 결과는 11월 중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외신을 통해 스푸트니크 V가 한국에서 생산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직 국내 제약사들은 스푸트니크 V를 생산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도 "(러시아 백신) 위탁 생산에 대해 공식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국내서 독감 백신으로 인한 사망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도 문제다. 독감 백신을 맞은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벌써 5건이나 나왔다. 독감 백신과 코로나19 백신은 전혀 무관하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백신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접종할수록 효용성이 높아진다. 전체 인구에 걸쳐 광범위하게 백신을 맞아야 감염을 확산시킬 수 있는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이 예산을 들여 무료 접종대상을 확대한 것도 대상자 한 명 한 명의 독감 예방을 위해서가 아닌, 전체 사회의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함이다.
영국, 미국, 남아프리카, 인도, 브라질 등의 연구원들은 세계백신협회(GAVI, the Vaccine Alliance)의 지원으로 백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 영상을 제작할 예정이다.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백신이 출시됐을 때,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백신 신뢰도, 그리고 정부 신뢰도를 높여야 할 때다. 보건당국은 조속히 독감 백신 문제를 해결하고, 백신에 대한 공포감을 유발하는 잘못된 정보 확산을 막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