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약은 할 말이 많다

글 정재훈(약사)|2017/09/28 09:00


만약 알약이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변비약’은 할 말이 참 많을 것이다. 이름부터 오해의 소지가 있다. ‘설사약’은 설사를 멈추는 약도 되고 설사를 일으키는 약도 되지만, 변비약은 변비를 일으키는 약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변비약의 공식명칭은 ‘완하제’로서, 변을 부드럽게 배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이다.

기전 따라 종류 다양한 변비약
수분 섭취 부족, 저섬유질 식단, 좌식 생활, 약물 부작용, 당뇨 같은 만성질환 등 변비를 일으키는 요인이 다양한 것처럼 변비약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수분을 빨아들이거나(고삼투압성완하제) 장 내용물의 부피를 늘려주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약(팽창성완하제)이 있고, 대변을 기름으로 코팅하여 수분이 대장으로 흡수되지 않도록 하여 변을 부드럽게 하는 약(윤활성완하제)도 있다. 대장 운동을 촉진시키는 약(자극성완하제)도 자주 사용하는 변비약이다. 자극성완하제는 효과는 좋지만,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이런 변비약이 장점막을 자극하여 장운동을 촉진하는 효과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장에서 싫어하는 성분이라서 빨리 내보내려고 장운동이 활발해진다는 의미가 된다. 자극성완화제를 필요 이상으로 과잉 복용하면 구토, 설사, 복부경련 등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마치 너무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배 아프고 설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황, 카스카라 사그라다 같은 자극성이 강한 성분이 요즘 변비약에 잘 쓰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인터넷 직구를 통해 종종 변비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을 먹기도 하는데, 이러한 금지 성분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살 빠진다?’ 체지방량에는 영향 없어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속설도 변비약 입장에서는 억울한 이야기 중 하나다. 그런 믿음으로 매일같이 변비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체중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잠시 가벼워질 뿐이다. 앞에서 설명한 다양한 변비약은 모두 대장에서 작용한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의 소화·흡수는 그 앞 단계인 소장에서 이미 다 끝난 일이다. 변비약을 복용했다고 주요 영양소의 흡수가 줄어들지 않으니 장기적으로 체중을 줄여주는 효과 또한 없다. 물과 전해질, 우리가 소화할 수 없는 섬유질이 배설된 만큼 저울의 눈금이 내려갈 수는 있지만, 체지방량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장 청소 하겠다며 먹으면 곤란
‘먹고 나면 시원하지만, 뭔가 찜찜하다’도 변비약이 자주 듣는 말이다. 만성변비로 거의 매일 변비약을 복용하는 사람일수록 걱정이 많다. 하지만 권장 용량에 맞춰 사용하는 한, 변비약으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과거에는 자극성완하제를 너무 오래 사용하면 장내 신경이나 근육을 손상시키거나 대장암 위험이 높아진다는 등의 우려나 사례 보고가 있었지만, 최근의 새로운 임상 연구를 보면 매일 변비약을 복용한다고 해서 특별히 심각한 부작용을 걱정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장 청소 하겠다고 완하제를 과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심장이나 신장 기능이 저하된 환자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변비약이 수분과 미네랄을 지나치게 내보내어 체액 균형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미네랄이라고 부르는 나트륨, 칼륨, 염소 등의 전해질은 우리 몸에서 근육과 신경의 기능을 조절하는 데 필수적이다. 변비약을 과용해 심각한 탈수와 함께 전해질의 균형이 깨지면 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발작을 일으키거나, 심장에 무리를 주어 심하게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종류에 따른 올바른 사용 필요
약이라고 다 같은 약이 아닌데,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취급당하는 것도 변비약으로서는 불평할 만하다. 종류에 따라 올바른 사용이 중요하다. 팽창성완하제는 주로 섬유질 성분으로, 장기간 변비약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알맞다. 수용성 섬유질은 물을 흡수해 젤리같이 변하며 팽창하면서 장운동을 촉진시키는데, 이때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또한 섬유질이 주성분이므로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길게는 12~72시간까지 걸릴 수 있어서, 변비가 생겼을 때 급하게 쓰기보다는 예방약으로 사용하기에 알맞은 약이다. 폴리에틸렌글리콜(PEG)이라는 긴 이름의 완하제도 부작용이 적어서 변비에 자주 사용하지만, 효과는 느린 편이다. 반면에 자극성 완하제는 효과가 빠르다. 복용 후 6~12시간 만에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 이유로 센나, 비사코딜 같은 자극성완하제는 밤에 잠자기 전에 복용을 권장하는데, 아침식사 뒤 장운동이 가장 활발할 때 효과를 보기 위함이다.

변비약을 우유와 함께 복용하면 안 된다는 말은 어떤가? 모든 완하제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자극성 변비약의 경우 맞는 말이다. 약성분이 장에서 녹도록 특수 코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알약을 우유와 함께 마시면 장에서 녹을 코팅이 위에서 미리 녹아버려 위통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하루 6~8컵으로 수분 섭취를 늘리면 변비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막연히 변비 같다는 느낌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약을 먹어서는 안 된다. 본래 사람마다 화장실에 가는 회수가 다르다. 하루에 화장실 세 번 가는 게 보통인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1~2일에 한 번만 가기도 한다. 빈도가 일정하고 변을 보는 데 큰 힘이 들지 않는데 화장실에 적게 간다고 변비약을 찾을 필요는 없다. 조금만 답답해도 변비약을 찾는 게 습관이 되면 약 없이는 화장실을 못 갈 듯, 불필요한 불안감에 빠질 수 있다. 변비약이 말할 수 있다면, 그가 남길 마지막 한마디는 ‘나한테만 의존하지 말고 생활습관을 바꿔보라’는 말일 것이다.

변의 올 때마다 화장실 가야
생활습관 조정은 의외로 실행하기 쉽다. 변의를 무시하지 말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느낌이 있을 때 안 가고 참으면 변비가 생길 수 있다.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자. 식사량이 너무 적어도 변비가 생기니 무리한 다이어트를 피하고 소식할 때일수록 섬유질이 풍부한 식사를 하자. 되도록 매일 같은 시간대에 화장실 가는 습관도 좋다. 특히 하루 중 장운동이 제일 활발한 아침식사 뒤 10분 내에 변을 보면 바람직하다. 모쪼록 건강을 위해 약과 내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자.


정재훈 과학·역사·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홍보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