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건 인생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입니다"

취재 이해나 기자|2016/05/18 11:20

네 자녀 13명의 대가족과 한집에 사는 이화여대 의대 이근후 명예교수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82)는 2013년 출판한 베스트셀러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로 멋지게 나이 드는 법을 설파한 작가다. 50년간 정신과 교수로 지내다, 은퇴 후 부인 이동원 씨와 가족아카데미아라는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76세에는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했다. 10년이 넘도록 네 자녀의 가족과 한 지붕에 살며 행복한 대가족의 삶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한 지붕 다섯 가족' 이야기

이 교수 부부는 네 자녀의 가족 13명이 4층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예상외로 며느리가 제안해 이뤄진 일이란다. 부모가 먼저 제 의했으면 같이 살기 어려웠을 거라고 김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합의가 이뤄졌습니까?
제가 아닌 장남 내외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요. 네 형제자매가 부모를 같이 모시자는 취지였지요. 네 자녀 내외 가 모두 맞벌이를 해 급할 때 손을 빌려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어요. 좋은 뜻에서 시작해도 갈등 만 키우다 서로를 미워할지도 모를 일이어서 심사숙고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결국 모두 동의했죠. 각자 살던 집의 전세금을 합치면 집을 한 채 지을 수 있는 여유도 되더라고요. 이런 여러 실리적 이유가 컸어요.

막상 살아보면서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나는 불편한 게 전혀 없어요. 자녀 입장에서 부모와 같이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거운 무게감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건 알아요. 그래서 제가 강조한 게 상호 불간섭주의와 독립성 보장이에요. 자녀 집에 갈 때 계단 몇 걸음만 올라가면 되지만 반드시 전화를 먼저 해 허락을 구해요. 또 각 가정과 개인의 일이 가족 전체의 일보다 우선하도록 했어요. 이렇게 산 지 10년이 넘었는데, 제가 계획한 가족공동체로서의 실험은 비교적 성공한 것 같아요. 나이 들어 각종 병을 달고 사는 제가 최고의 수혜자죠(웃음).

3대가 같이 사는 가족이 꽤 많습니다. 갈등 없이 조화롭게 살려 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정에서 나아가 존중해야 돼요. 부부 사이에도 서로를 100%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제 생각에 부부는 서로 10%도 안 되는 공감대를 가지고 살아가요.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죠. 내가 원하는 걸 상대방이 무조건 따라주기 바라면 안 돼요. 같은 취미를 공유하면서 즐기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저도 과거엔 가족들과 등산을 자주 다녔어요. 나이가 들어 제 안전을 위해서인지 요샌 잘 안 끼워주지 만요(웃음).

 

▲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청소년·중장년·노년 삶 아우르는 '가족아카데미아'

가족아카데미아는 이근후 교수와 부인 이동원 씨가 함께 만든 연구 모임이다. 이 교수가 평생 연구한 정신과와 부인 이씨가 전공한 사회학이 '가족'이라는 주제에서 교집합을 이뤄 함께 연 구를 시작했다. 두 학문을 더해 현대사회에 맞는 바람직한 가족 의 역할을 제시해보고자 했다.

가족아카데미아에선 어떤 활동을 합니까?
가족에 관한 연구, 청소년 성 상담, 사이버 상담, 부모 교육,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노년의 준비 전략 구현 팀으로 구성됐어요. 노년의 준비 전략을 구현하는 팀은 인생 의 이모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기도 하죠. 1990 년대 초반 특정 회사와 공동 프로젝트로 은퇴를 앞둔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몇 개월 휴가를 주고 이모작 준 비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의아했던 것이, 휴가를 줘도 안 오더라고요. 정년 이후를 생각 지 않고 바쁘게 살기만 원했던 거죠. 요새는 좀 달라요. 노년의 삶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가족아카데미아에서는 현재 소수 정예로 은퇴 후 이모작 교육 을 하고 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아요.

연구소 프로그램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건가요?
누구든 참여할 수 있어요. 회비만 내면요. 연구소엔 강사 뱅크도 풍부합니다. 은퇴한 교수는 물론 현역 교수들 까지 함께 연구하고 교육합니다.

 

▲ 2012년 4월 가족아카데미아 옥상에 지은 세심정(洗心亭). 마음을 닦는 정자라는 뜻이다.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사는 법

이 교수는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에서 멋지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해 소개했다. 구체적인 방법을 물었다.

정년 이후를 심심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우울증을 겪는 비율도 젊은층에 비해 많고요. 이유는 무엇이고,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노인이 되면 인생의 일모작은 잊어야 합니다. 많은 노인이 '나는 분하다' 혹은 '외롭다'고 생각하는데, 다 일모작을 못 잊어서 하는 말이죠. '나는 과거에 참 잘난 사람이었는데' 하는 생각이요. 과거에 매달려 있으면 불행해요. 이모작은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돼요.

'스마트(SMART)' 에이징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해요. 이건 제가 만든 단어인데, 각 철자마다 의미가 있습니다.

S는 '단순함(Simplifying)'을 뜻해요. 수많은 정신과 환자를 치료해본 결과, 공통적인 부분이 생각이 너무 많다는 거였어요. 생각을 단순하게 하는 게 건강해지는 길이죠.

M은 '움직임(Moving)'이에요. 저는 일요일에도 연구소에 출근합니다. 집에만 있으면 하루 종일 TV 보고, 오래 누워 있게 되는데 그럼 오히려 월요일에 피곤해요. 움직이는 건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건강수칙에도 들었어요.

A는 '정서(Affecting)'예요. 노인이 되면 여러 감각 기관이 퇴화해요. 실제로 노인들은 표정이 별로 없어요. 일부러라도 음악회, 미술관에 가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세요. 작품을 누가 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림을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보면 정서가 퇴보하지 않는 데 도움이 돼요.

R은 '휴식(Relaxing)'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긴장한 상태에 있어야 덜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급격한 경제 발전을 겪으면서 긴장한 상태에 적응이 된 거죠. 하지만 때로는 편하게 쉴 줄도 알아야 돼요.

마지막으로 T는 '함께(Togethering)'예요. 일부러 'ing'를 붙였어요. 늘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로요. 함께 나누자는 거예요. 나누려면 무조건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오래 산 것은 그 만큼 재주가 있다는 뜻이죠. 그간의 경험을 나누면 돼요. 봉사를 하거나 주민과 수다 떠는 것도 나누는 것입니다.

그동안 굳어진 습관 탓에 실천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단 SMART의 조건을 계량화해야 돼요. 각각 나는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지요. 중요한 것은 나한테 없는 걸 높이면 안 된다는 겁니다. 모자라는 건 포기해야 돼요. 노인은 실제로 훈련해도 바꾸기가 어려워요. 예를 들어, M(움직임)이 평소 없던 사람은 갑자기 활동량을 늘리면 오히려 병들 수 있어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후 그걸 더 활성시키세요.

 

▲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노화, 질환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

김 교수는 당뇨병, 고혈압, 통풍, 관상동맥협착, 담석, 허리디스크에 왼쪽 눈의 시력 상실까지 7개의 병을 안고 산다. 하지만 노인들에게 병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아프라고 말한다.

건강은 어떠세요? 질환은 잘 관리하고 있으신지요.
잘 관리되고 있어요. 의사 말 잘 듣는 게 첫째예요. 현재 수준의 의학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발전할 만큼 최대로 발전한 겁니다. 저는 또 의사이기 때문에 의학의 힘을 믿고요.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 어떤 약을 처방했는지, 부작용은 무엇인지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복용해요. 약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거예요. 약을 무조건 불신하면 기분 나쁜 것 때문에라도 흡수 안돼요(웃음).

왼쪽 눈의 시력은 왜 나빠졌나요?
산에 올라 눈이 잘 안 보여 고산병 탓인 줄 알았어요. 병원을 찾았더니 눈 혈관에 이상이 있었죠. 이와 관련해 이러저런 검사를 받다 심장에서 더 큰 문제를 발견했어요. 선천적으로 심장 혈관이 좁은 것인데 자칫하면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태였던 거예요. 두 가지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한쪽 눈은 시력을 잃고, 대신 심장의 문제를 해결했어요. 결론적으로 눈 덕에 더 큰 병을 발견했으니 순순히 받아들였어요.

그 밖에 여러 병이 있지만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살 수는 없잖아요. 나이 들어 몸에 생기는 신체적 고통은 고약한 '친구'라고 생각해야 돼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건 그 어떤 명의보다 낫습니다.

늙어간다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손자, 손녀가 태어나는 순간 기쁨과 서운함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손자가 태어날 때 기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어색하고 뭔가 섭섭한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이후 깨달은 게 조부모 단계는 인생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라는 거예요. 인생의 한 단계를 또 올라섰음을 뜻하죠. 지난 삶을 돌아보고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해요. 집안에서 조부모는 태양과 같은 존재예요. 자녀와 손주들이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로 걱정할 때 인생의 통찰력과 안목을 심어줄 수 있잖아요.

나이가 들었다고 억울해하지만 않으면 굉장히 행복할 수도 있어요. 시간이 많아질 뿐 아니라 지금껏 경험 못한 것에서 얻는 새로운 감동이 많거든요. 스무 살의 즐거움과 마흔, 쉰 살이 돼 느끼는 삶의 즐거움은 전혀 달라요. 그런데 그 다름이 만드는 특별한 가치가 있죠. 젊을 땐 기계적으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잖아요, 저는 요새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쾌재를 불러요. '와! 눈떴구나!' 하면서요. 이것도 나이 든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동 아닐까요(웃음). 인생은 어느 시기건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어요. 지금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찾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