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 피울 때마다 다음번 잠자리는 부실해진다

기고자 김재형|2014/09/29 16:35

진한 사랑 후 피우는 담배가 맛있다?


요즘에는 텔레비전에 담배 피우는 장면이 금지돼 보기 힘들다. 예전 드라마에는 남녀가 진한 사랑을 나눈 후 남성이 담배를 피워 물곤 했다. 그러다 보니 담배가 남성의 전유물같이 느껴지지만, 원래는 여성에게도 인기만점인 기호품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담배가 임진왜란을 통해 전해졌는데, 이내 남녀노소가 즐기는 기호품이 됐다. 구한 말 불리던 ‘담바귀타령’을 보면 “총각의 쌈지도 한 쌈지요, 처녀의 쌈지도 한 쌈지라. 물길러 가다가 또아리 벗어 손목에 걸고 동이는 내려 옆에 끼고 담바고 한 모금눈앞에 황룡과 청룡이 어른댄다”는 구절이 있었다.

또, 대갓집 마님들은 ‘연비(煙婢)’라 해서 담뱃대를 들고 시중드는 계집종까지 둘 정도였다. 천민 여성이 흡연에 가세하자 천민과 똑같이 행동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양반 여성에게 금연을 시켰을 뿐이다.

▲ <사진 읽어주는 여자> 낸 골딘作

담배가 남녀를 불문하고 사랑을 받게된 것은 담배를 피우면 긴장이 완화되는 효과 때문이다. 사랑을 나누고, 상대방을 만족시키느라 긴장한 몸을 편안하게 이완시키기 위해 담배를 찾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될 때 담배한 대 피워 물면 편안해진다.

과거 야구선수들이 경기 전 긴장을 풀기 위해 담배를 씹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성의 경우 담배를 피우면 입맛이 없어져 무엇인가 먹고 싶은 욕구가 사라지기 때문에 살이 빠지는 것으로 느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초창기에는 담배가 두통과 배앓이에 효과가 뛰어난 약초로 알려진 적도 있다.

그러나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간접흡연도 주변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쳐 ‘간접살인’과 다름없다 할 정도다. 특히 흡연은 성기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체내에 흡수된 니코틴이 혈관과 혈류의 흐름에 영향을 미쳐 발기력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면 정자 수가 줄어들거나 기능이 약화돼 남성불임이 될 수도 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이 생식 능력이 있는 남성과 불임남성의 흡연 여부와 이들에게서 채취한 정자 샘플을 비교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최근 아내를 임신시킨 남성 240명과 불임남성 2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분석에서 정자 수가 평균치 이하인 경우, 흡연 남성은 비흡연 남성에 비해 불임 가능성이 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정자 수가 정상인 경우도 흡연 남성은 비흡연 남성에 비해 불임률이 16%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정자 수가 정상이라도 담배를 피우면 임신이 어렵다는것’이다. 한편 연구팀은 50년 전만 해도 남성의 평균 사정량(射精量)이 정액1mL당 1억3000만 마리였으나 요즘은 6500만 마리에 불과하다며, 담배의 폐해를 경고했다. 흡연은 여성에게도 건강의 적이다. 생리불순과 조기폐경 등 다양한 질병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임신 중에 흡연하면 태아의 키와 체중이 줄고, 우범자가 태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따라서 건강과 활력 있는 성생활을 위해서는 금연이 필수이다.

▲ 흡연 남성의 불임 가능성이 비흡연 남성의 불임 가능성보다 6배 높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이는 정자수가 정상이라도 담배를 피우면 임신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섹스 후 담배를 피우면 긴장이 완화된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는 담배를 피우는 동작에서 비롯된 이점일 뿐, 니코틴의 직접적인 장점은 아니다. 담배연기를 ‘후’하고 내뿜을 때 어깨가 처지면서 근육 긴장이 풀리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최근 여러 연구를 통해 담배를 피우면 긴장이 완화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도움이 없음이 밝혀진 바 있다.

야구선수들 역시 씹는 동작 때문에 긴장이 완화되는 것일 뿐 담배가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엽산이 풍부한 해바라기씨가 야구선수들의 씹는 담배 대체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혈액순환을 도와 운동능력을 향상시키기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섹스 후에도 차라리 해바라기 씨를 먹으면 어떨까. 혈행이 개선돼 발기력이 좋아진다.

담배에 대한 얘기는 인디언 신화에 처음 등장한다. 아주 오래 전, 땅이 척박해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며 지내자 ‘위대한 영혼’이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한 여인을 땅으로 내려 보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녀가 오른손으로 만지는 땅에는 감자가, 왼손으로 만지는 땅에는 옥수수가 자라게 됐다. 세상이 풍요로워졌을 때 비로소 그녀는 땅에 앉아 휴식을 취했는데, 그 자리에 담뱃잎이 자라게 됐다’는 기록이다.

인디언의 사랑을 받던 담배가 전 인류로 확산된 것은 16세기 포르투갈 리스본 주재 대사 장 니코에 의해서다. 그가 보낸 담뱃가루로 만성두통으로 고생하던 왕비의 병을 고쳤다는 소문이나자, 전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급속하게 전해졌다. 그래서 장 니코의 이름을 본떠 니코틴이라 부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디언의 저주’였다. 인디언이자신의 땅을 빼앗은 약탈자에게 담배를 전해주어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담배를 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담배 피우는 모습을 멋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만약 아직도 담배에 현혹된다면, 담배가 약탈자에 대한 ‘복수의 도구’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혹시라도 배우자와의 섹스가 불만이라서 해꼬지를 할 요량이 아니라면 부부관계 후 담배를 꺼내물지 말자.


"담배를 끊기 위해 받는 스트레스가 담배의 유해성보다 더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담배가 자신뿐 아니라 사랑하는 배우자에 대한 복수이자 치명적인 공격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일까"


▲ 김재형

김재형

남성 수술 분야를 이끌고 있는 강남퍼스트비뇨기과 원장.

주요 일간지 칼럼과 방송 출연 등을 통해 건강한 성(性)에 대한 국민 인식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월간헬스조선 9월호(134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