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망증 방치하면 치매로 악화

|2006/09/12 17:44

수술받은 노인 30%가 섬망<br> 기억상실·착각 등 치매와 비슷


얼마 전 뇌혈관 수술을 받은 김모(72)씨. 늦은 밤 갑자기 일어나 현관문을 붙잡고 바르르 떨다가 현관문에 불이 켜지자 “불이야”라고 외친다. 이 소리에 놀란 아들이 김씨의 방에 찾아가자 “당신 누구야?”라고 묻기까지 한다. 김씨 가족은 벌써 몇 일째 밤잠을 설치고 있다.

얼핏 치매인 듯 보이는 김씨의 증상은 ‘섬망’이다. 입원치료를 받은 70세 이상 노인환자의 30%에서 나타나는 흔한 질환이다. 고령에 대수술을 받으면 신체리듬이 깨어지고 환경이 급변하기 때문에 수술 후 갑작스런 의식장애와 혼동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퇴원 후 평소와 달리 주의가 산만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느끼며, 자신이 처한 시간과 장소를 거의 깨닫지 못해 멍한 상태로 하늘을 쳐다보거나 소리를 치는 등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일 경우 섬망을 의심할 수 있다. 치매와 비슷해 보이지만 치매와 달리 급성으로 발병하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섬망 증세가 나타나면 집중력과 지각력에 장애가 와서 기억장애, 착각, 환각, 해석 착오, 불면증, 악몽, 가위눌림 현상 등을 보일 수 있다. 사람들과 얘기할 때 안절부절못하거나, 말을 하다 갑자기 침묵하거나, 보통 사람보다 공포를 훨씬 많이 느끼거나, 슬픈 일에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전형적 증상이다.

섬망의 원인은 그 증세만큼 다양하다. 전신에 병균이 감염됐을 때, 뇌에 산소공급이 잘 안될 때, 혈액에 당분이 모자를 때, 간장이나 신장에 질환이 있을 때, 뇌세포의 대사과정에 관여하는 필수 비타민(티아민)이 부족한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섬망을 방치하면 치매로 악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제 때 치료하면 1~2주 만에 완치가 가능하다. 치료는 일상생활의 리듬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병실 주변 환경을 잘 정리정돈하고, 집에서 쓰던 낯익은 물건 한 두 가지를 환자 주변에 두어 정서적인 안정을 꾀한다.

친근한 신체접촉이나 환경변화만으로 증상이 호전되기도 한다. 가까운 가족이 자주 방문해 계속 대화하는 것이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낮 동안에는 병실을 환하게 유지해 주고, 밤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물품을 치우는 것이 좋다.

/신영민·서울특별시립 북부노인병원 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