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피서법,악! 하고 놀라니 시원해지네

김원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2006/07/04 16:16


한여름 밤, 어둡고 시원하게 냉방된 극장에서 푸르스름한 영상을 뚫고 갑자기 온 몸이 피로 물든 살인마가 나타난다. 이어서 터지는 관객들의 비명소리. 손에 땀이 흥건해지고,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공포 납량 영화를 보고 나면 한여름 무더위쯤은 까맣게 잊게 된다. 공포 영화가 항상 여름철에 개봉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왜 공포영화를 보면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더위를 잊게 될까?

공포 반응은 원시시대부터 인간 생존을 위해 뇌에 갖춰진 비상경보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산에서 갑자기 호랑이를 만났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뇌는 비상경보를 울려 호랑이와 싸울 것인지, 도망갈 것인지를 순간적으로 결정하게 한다. 이것이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이다.

자, 이제 우리의 뇌는 아주 바빠진다. 뇌의 깊은 곳, 아몬드처럼 생긴 송과체(amygdala)는 지금의 공포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판단하고 대뇌 피질과 함께 위험도에 따라 적절한 대처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이에 발맞추어 시상하부(hypothalamus)는 자율신경계에 명령을 내려 몸을 전투 체제로 전환시킨다. 그 결과 교감신경이 흥분하여 동공이 커지고 심장이 빨라지며 호흡이 가빠진다. 온 몸에 털이 곤두서고 팔다리에 근육이 솟으면서 땀이 저절로 흐른다. 이런 반응들은 근육에 모든 힘과 혈액을 집중시켜 맞서 싸우거나 빨리 도망가기 위한 몸의 자연스런 기전이다. 땀은 심한 운동에 따른 열을 식히기 위해 많이 분비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포영화를 볼 때는 호랑이가 없다. 뇌는 위급 상황이라며 전투 명령을 내렸지만 몸은 심한 운동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신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땀만 많이 나게 되는데, 그 땀이 식으면서 시원함과 오싹함을 느끼게 된다.

그럼 이렇게 공포영화를 보면서 무더운 여름을 나는 게 우리 건강에 좋은 것일까? 각자 입맛에 따라 커피 취향이 다르듯 공포영화도 잘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이 있다. 이는 송과체의 예민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뇌 영상 연구를 해보면 공포영화를 즐기는 사람은 놀람과 무서움에 대한 송과체의 반응이 크지 않다. 이들은 무딘 송과체를 자극시키기 위해 더 무섭고 강렬한 것을 원한다. 송과체가 무딘 사람은 적절한 각성과 자극을 위해 ‘공포영화 마니아’가 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신체나 정신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반대로 공포영화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의 송과체는 조그만 자극에도 매우 민감하다. 이런 사람은 ‘공포영화 포비아’가 생겨 점점 더 공포영화를 싫어하게 되므로, 억지로 공포영화를 보게 해선 안된다. 싫어하는 자극에 계속 노출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의 작용이 길어져서 우리 몸과 마음은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은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