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케이크에 초를 켜세요

저는 병실에서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은 분, 말은 안 하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을 만큼 화가 나 있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환자분들을 만나면 종종 이런 말을 하십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손에 힘도 안 들어요.” “생각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가슴이 뛰고 화가 납니다.” 암 진단 이후의 치료 과정은 누구에게나 막막하고 두렵고 불안하며 ‘왜 나여야 하는지’에 대한 화가 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럴 때, 환자분들 손에 점토 두 덩어리를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무엇을 만들려고 하지 마시고요. 그냥 손으로 한번 만져보세요. 느낌 괜찮으면 주물러보세요”라고 합니다.

참 신기하지요. 손끝이 점토의 촉감을 천천히 느끼기 시작하면서 손바닥으로 접촉을 늘리고 오른손과 왼손이 같이 움직이면서 점토를 만지는 감각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를 마주합니다. 화가 났던 분도 무기력했던 분도 모두 호흡이 안정되고 몸이 이완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촉각 자극이 손끝의 감각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면, 편도체가 잠시 조용해지고, 몸을 안정시키는 부교감신경이 서서히 활성화됩니다. 그래서 손을 움직이기만 했는데도 마음이 살짝 느슨해지면서, 좀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표정이 흘러나옵니다. 이처럼 작은 감각경험도 이렇게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이제 점토에 대한 감각 작업이 충분히 다루어졌다면 이제 점토 덩어리에 의미를 담는 시간입니다. 나눠드린 두 덩어리 중에 한 덩어리에 불안, 두려움 등 현재 내 삶의 어려움을 담아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점토를 꼬집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한참을 그냥 꽉 쥐고 계십니다. 그 제한적인 움직임 안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을 감당해내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집중해서 만지던 점토가 마음의 무게를 잠시 담아내 작은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덩어리에는 그런 고통 중에서도 느끼는 감사와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보자고 합니다. 늘 힘들다고 하시던 분들도 좀 전에 고통을 표현해두었기 때문일까요? 삶의 감사와 아름다움을 또 집중해서 작업하십니다. “단풍이며 은행잎이며 살아있으니 볼 수 있는 이 가을에 감사합니다.” “남편이 매일 와주니 감사하죠.” “이 점토를 만지고 있는 나의 손, 움직여 주니 고맙습니다.” 그렇게 작은 희망이 점토에 조금씩 새겨집니다.

모든 환자분 한손에는 삶의 어려움이 또 다른 한 손에는 삶의 기쁨과 거룩이 쥐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만든 두 개의 점토를 한 접시에 차곡차곡 쌓아 올립니다. 고통과 감사, 눈물과 웃음, 무기력과 작은 힘, 불안과 용기, 분노와 가족 사랑 이처럼 두 가지의 대립하는 마음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이 큰 덩어리는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의 삶’ 같은 모습이 됩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그 위에 아름다운 초 하나를 꽂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 ‘와~’하면서 탄성을 지릅니다. ‘케이크네~’라면서요.

저는 “고통도 감사도 모두 품고 있는 여러분의 오늘을 축하합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이 초는 나를 위한 축하의 초입니다.

환자분들은 조용히 그 초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십니다. 어떤 분은 “이 입원복을 입고 파티를 하네요”하며 웃으시고 “안 좋은 일의 연속이었는데 오늘을 축하하자고 하시니 또 이렇게 살아있는 게 축하할 일이네요” 하며 미소를 지으십니다.

나를 위한 작은 케이크를 떠올리세요. 암이라는 어둡고 좁은 길을 걷고 계신 여러분께 저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작은 케이크에 불이 켜드리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하루도, 버티느라 너무 힘들었던 하루도, 그 자체로 축하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오늘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