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여명 3개월’ 뇌전이 유방암도 살 수 있어요

암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듭니다. 거듭되는 암 재발은 희망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홍가영(36·제주도)씨는 갑작스러운 유방암 진단과 척수 전이로 인한 ‘기대 여명 3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잃지 않았습니다. 홍씨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며 ‘극단적 장기 생존자’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의 주치의인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이지은 교수와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유방암 3기 판정

홍가영씨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건 2019년 2월입니다. 양쪽 가슴에서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2주간 지속돼 동네병원에 갔더니 “모양이 좋지 않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곧바로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정밀검사를 실시한 결과, 왼쪽 유두에 파제트암(유두의 피부를 침범하는 유방암의 일종), 오른쪽에는 10cm 크기의 종양이 있는 HER2 양성 유방암 3기였습니다.

홍가영씨는 암이라는 말을 듣고는 ‘나한테 왜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는 생각이 들며 억울했다고 합니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한 해 전 골육종암을 진단받은 친오빠의 경험이 있어 암에 대한 두려움도 컸습니다. 주치의인 이지은 교수는 당황하는 홍씨와 그의 가족들을 잘 이끌어주었습니다. “불치병도 아닌 치료할 수 있는 병이니, 믿고 따라와 달라”는 이 교수의 말에 용기를 얻어 치료 의지를 다졌습니다. 

치료는 곧바로 시작됐습니다. 표적 치료 항암제(허셉틴, 퍼제타)와 세포 독성 항암제(카보플라틴, 도세탁셀)를 병행한 TCHP 요법을 시행했습니다. HER2 양성 유방암은 전이가 빠르고 공격성이 높은 암으로,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수술 전 선행 항암 요법이 사용됩니다. 항암 치료 후 양쪽 유방 전절제술을 받았습니다. 남아 있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트라스투주맙·퍼투주맙 병용요법을 진행했습니다. 왼쪽 호르몬 양성의 상피내암에 대한 호르몬 억제제도 복용했습니다. 치료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기대여명 3개월이었지만 희망의 끈 놓지 않아 

2022년 3월, 불행이 한 번 더 찾아왔습니다. 추적 관찰 중 뇌의 가장 밑바닥 부위인 뇌 기저부에 작은 종양이 발견됐습니다. 유방암 환자의 20~40%가 뇌 전이를 경험할 정도로, HER2 유방암은 뇌, 폐로 전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두술로 암의 일부를 제거한 후 뇌 전체에 방사선을 조사하는 전뇌방사선 치료도 시행했습니다. 

암과의 작별은 어려웠습니다. 2022년 8월 또다시 암이 발견됐습니다. 몇 개월간 사라지지 않던 허리 통증과 하지 피부 감각 이상이 걱정돼 검사해보니, 척수 전이였습니다. 뇌 전이 말기에 해당하는 척수 전이는 치료를 잘 받아도 기대 여명이 3개월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살기 위해 치료를 곧장 시작했습니다. 뇌 척수강 내 항암제를 주입하는 ‘오마야 카테터’ 삽입술과 전신 방사선 치료를 다 같이 진행했습니다.

치료의 벽은 높았습니다. 오마야 카테터 부작용으로 대소변을 못 가려 기저귀를 써야 했고 패닉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스테로이드 사용으로 인한 쿠싱증후군 부작용으로 체중이 증가하고 얼굴 모양이 변하기도 했습니다. 다리 마비 탓에 보행 보조기인 지팡이 없이는 보행이 어려웠습니다. 거듭되는 낙상과 구토 같은 각종 부작용을 너무 견디기 힘들었던 홍씨는 “내가 과연 살 수 있을까”라며 치료를 포기할 생각도 했습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며 홍씨는 “싫은 기색 없이 깨끗하게 닦아주고 제 곁을 24시간 지켜주던 남편이 없었다면 포기했을 것이다”며 “가족의 지지 덕분에, 두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치료에 임했다”고 말했습니다.

절실함이 통했던 걸까요, 좌절 순간에 다시 희망이 생겼습니다. 뇌·척수 전이에 효과가 있지만 당시 국내 승인 허가가 되지 않았던 신약 투카티닙의 효과를 봤습니다. 격렬한 운동은 하지 못하지만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뇌와 척수에 있던 암세포가 사라지며 ‘완전 관해’ 수준으로 치료 효과도 좋았습니다. 이지은 교수는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결과에서도 암세포 활동이 중단됐다”며 “약효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항암 치료를 이어갈 계획이다”고 말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두 번의 전이를 겪으며 좌절할 법도 했지만 홍가영씨는 무너지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바꿨습니다. 우선, 일상 속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홍씨는 2020년부터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공기 좋은 제주도에서 천천히 걸으며 자연의 싱그러움을 느끼니 치유의 힘이 생겼다고 합니다. 유튜브에 암 투병 과정과 다양한 치료법 등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독자가 3.5만명까지 늘었습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엔허투 허가를 위한 국민동의 청원을 공유하며 엔허투 승인과 급여 적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암을 투병 중인 환우들이 자신을 보며 힘을 내기 시작했다고 하는 댓글들을 보면 선한 영향력을 선사한 것 같아 행복했다고 홍씨는 말합니다.

큰 힘이 된 가족과 주치의

힘든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홍가영씨만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이었습니다. 홍씨는 암에 걸리기 이전부터 낙천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의료진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완치될 거라고 반복적으로 세뇌하며 암 투병을 이어갔습니다. 암을 이겨내기 위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챙겨 먹었습니다. 가족들도 암을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암 진단 직후부터 줄곧 남편은 홍씨 곁에 있었습니다. 밤낮으로 부축하고, 말동무가 되어주며 팔다리를 주물렀습니다. 덕분에 홍씨는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무사히 회복했습니다. 

암과 싸우는 동안, 가족 외에도 홍씨에게 큰 힘이 돼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지은 교수입니다. 암 진단 후 가슴이 먹먹하고 힘들었던 순간부터 두려움으로 나약해졌던 두 번의 암 전이 후까지 이 교수는 항상 홍씨 곁에서 응원단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엔허투와 투카닙과 같이 약제에 대한 소식도 상세하게 설명해주시며 암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시는 교수님을 보고 치료 의지를 더 강하게 다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홍씨는 “교수님의 응원에 보답하고자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치료에 열심히 임했다”며 “제 인생의 우상 같은 존재다”고 말했습니다. 

<홍가영씨>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제주에서 남편과 강아지들과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3주 간격으로 치료 받고 있습니다. 체력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콩튜브’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투병 일기와 일상을 계속 공유하고 있습니다. 또 암 환자가 된 이후의 특별한 삶을 글로 남기고 싶어, 책을 집필 중이기도 합니다. 하루하루가 쌓여 1년 뒤에는 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출간하고 싶습니다.”

-암 진단 후 삶의 목표가 달라지셨다고.

“암 치료를 받으면서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해지게 됐습니다. 암 진단 전만 해도 하고 싶거나 해야 할 일을 미루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암 진단 후 소풍을 가는 환우들을 옆에서 보며, 그 어떤 작은 일이라도 미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며, 하고 싶은 게 떠오르면 하나씩 바로 실천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되도록 빠르게 만납니다. 그렇게 해서 제주 살이도 시작하고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극단적 장기 생존자’가 꿈이시라고요?

“투병 중 우연히 접한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범석 교수님의 책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 본 말입니다. ‘극단적 장기 생존자’는 저처럼 좋지 않은 상황의 사람들이 장기 생존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유튜브를 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와 같은 악플 때문에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오히려 ‘극단적 장기 생존자’가 돼 오래 살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기 생존자가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우선시하며 긍정적으로 삶을 대했습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골고루 챙겨 먹으며 치료에 더 전념했습니다. 더 잘 먹고 치료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체력도 마음도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순간 암과 싸우고 계신 분들께 한마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희망과 용기를 가지세요. 힘든 순간이 생길 때마다, 좋지 않은 부위에 암이 전이되고 지옥 문턱에서 돌아온 저를 떠올리세요. ‘난 쟤보다 나으니까, 할 수 있어’라고 다짐하며 힘을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으니, 자신감을 잃지 않고 치료에 임하면 회복도 더 잘 될 거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많은 HER2 저발현 환자들은 여전히 약가 부담으로 치료를 주저하거나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HER2 저발현도 HER2 양성 사례처럼 정부에서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해서 꼭 급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지은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현재 홍가영씨의 정확한 건강 상태를 알려주세요.

“뇌 척수에 전이됐던 종양은 1cm 미만의 병변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현재 표적 치료제인 엔허투로 유지 요법을 진행 중이며 1개월마다 CT 검사를 통해 추적 관찰 중입니다. 지금처럼 꾸준히 병원에 오셔서 검사받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시기만 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홍가영씨가 기억에 남는 환자 중 한 명이라고요?

“워낙 밝은 성격의 소유자셨고, 암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했습니다. 치료 과정이 힘들고, 갑자기 쓰러졌을 때라든지 힘든 상황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받아들이며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셨습니다. 암 환자 치료 개선에도 힘을 쓰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암 치료 중임에도 불구하고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의 식약처 승인을 위해 국민청원 글을 유튜브 채널에 올리며 힘을 쓰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무엇보다 의료진을 믿고 적극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종양내과 명의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

“홍가영씨와 같이 긍정적으로 암을 대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특히 유방암은 생각보다 젊은 연령대의 환자들이 많고 사회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더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환자들의 좋은 예후를 위해서라도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보험 제도도 환자가 치료를 안정적으로 받는 데 필요한 요소 중 하나로 생각합니다. 처음 약제가 도입되면 임상 데이터와 비교해 실제 사용 시의 효과를 가늠하는데요. 이때 임상시험에서 사용되었던 유사한 조건에서 약제를 사용해야 비슷한 성적을 기대할 수 있지만, 보통 급여 문제로(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약을 굉장히 늦게 사용하게 됩니다. 좋은 치료 성적을 위해, 안정적인 보험 지원이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암 환자들에게 한 말씀.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의료진은 늘 환자에게 알맞은 최선의 치료법을 고심합니다. 표준 치료법을 포함해 다양한 치료 방법이 있지만, 각 환자 케이스에 알맞은 최선의 치료법을 말씀드리니, 의료진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의료진과 환자의 관계도 중요한데요. 좋은 관계에서 치료를 받으면 치료 반응과 예후도 좋아지니, 주치의와 상담해 치료를 잘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의료진을 믿고, 가족과 함께 노력하다보면 꼭 완치에 이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