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 이후 우리는 쉽게 감정이 흔들리곤 합니다. 병원 곳곳에서 ‘희망을 잃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마주하지만, 그 말이 내 삶과 연결되지 않을 때, 오히려 마음은 더 멀어지곤 합니다.
제가 완화의료센터에서 미술치료사로 환자분들을 만났을 당시, 센터장님은 항상 “환자분들이 헛된 기대를 하지 않고, 진정한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도웁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곱씹으며 저는 ‘기대’와 ‘희망’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두 단어는 일상적으로는 비슷하게 사용되지만, 심리치료나 철학적 맥락에서 보면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 김태은 교수가 그린 그림.
‘기대’는 특정한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는 심리적 예측이며, 결과 중심의 사고를 이끌 수 있습니다. 반면, ‘희망’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바라는 태도로, 내면의 믿음이나 신념을 기반으로 합니다. 저는 그 차이를 인식하고 ‘희망’이라는 말을 되물으며, 환자를 마주하는 제 자신의 태도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훈련해왔습니다.
‘희망’이라는 한자의 어원을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희(希)’는 드물지만 간절한 바람을, ‘망(望)’은 멀리서 달을 바라보는 눈,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을 향한 시선을 의미합니다.
철학자 마르셀은 희망을 ‘기다림’이 아닌 ‘존재의 신뢰’라고 말했으며, 블로흐는 희망을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향한 실천적 상상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희망의 어원과 철학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희망’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깊고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삶의 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말기 암 환자분들이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에 입원하실 때, 많은 경우 우울과 무기력, 절망을 호소하십니다. 예전에 만났던 81세의 폐암 환자분은 완화의료 병동으로 옮기시던 날부터 의료진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침묵 속에는 억울함, 분노, 절망감이 뒤엉켜 있었고, 그 절망은 옆을 지키는 보호자까지도 위축되고 지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환자분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시작이 돼주었던 존재는 바로 손녀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애교 많던 손녀는 어느 순간부터 방문을 걸어 잠그고 어른들과 말도 하지 않으려 했으며, 명절에도 할아버지를 만나러 오지 않던 시간이 2년째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손녀는 할아버지가 매우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문안을 왔고, 절망은 희망의 색으로 천천히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손녀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기억 속 모습처럼 할아버지 품에 안기더니, 자신의 휴대전화 속에 저장된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손녀는 “자신에게는 장래희망이 없다”며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놨고, 그 말에 평소 침묵하던 환자분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장래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마라. 다만 긴 인생을 살아가며 희망을 품는 건 정말 중요하다. 네가 좋아하고 즐거운 걸 찾아보렴.” 그 말을 들은 손녀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던 자신의 취미를 떠올렸고, 그날 이후 거의 매일 병원에 할아버지를 만나러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주무시는 모습, 할머니와 마주 보는 순간, 심지어 링거대에 붙어 있는 주의사항까지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습니다.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 모두가 그녀의 감각적인 시선에 감탄했고, 고립돼 있던 사춘기 소녀는 어느새 ‘사진작가’라는 꿈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손녀의 사진 속에 잘 담기고 싶어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미소는 진심 어린 회복의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희망은 말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살아 있는 에너지임을 알게 됐습니다.
손녀가 인화해 저를 통해 전달한 사진들을 들고 병실을 찾았을 때, 홀로 계시던 환자분은 저를 환하게 맞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제 ‘삶에 여한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제가 세상을 떠난다 해도, 우리 손녀가 나를 멋지게 찍어준 사진들이 있잖아요. 그 사진들이 있기에 나를 기억해 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환자분께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사진 찍는 꿈을 품게 해주셨고, 손녀는 또 할아버지의 미소를 되찾게 해준 존재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George Frederic Watts라는 작가의 ‘Hope’라는 그림을 본 적 있으신가요? 눈을 가린 여인이 지구 위에 앉아, 단 한 줄만 남은 리라를 연주하며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은 절망에 가깝지만, 이 작품의 제목은 역설적으로 ‘희망’입니다. 이 그림은 마틴 루서 킹의 설교에서도 인용된 바 있는데, 그는 “희망은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직시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림에서처럼 희망은 모든 줄이 끊어진 악기에서 마지막 한 줄을 연주하려는 태도이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암과 함께 살아가는 이 시간은 절망을 딛고 피어나는 희망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희망은 기적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상에서 기적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