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련형 전자담배, 유해물질 적으면 무조건 덜 해로울까

김진구 헬스조선 기자|2018/04/03 11:21


#1. 지난해 11월 14일,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판매하는 필립모리스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필립모리스의 의학 담당 수석인 미카엘 프란존 박사는 이날 자체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아이코스 속 유해물질은 기존 담배보다 90% 이상 적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코스를 90일간 피운 사람과 금연한 사람에게서 각각 일산화탄소·벤젠 등 15개 발암물질 수치를 비교했더니, 금연자와 아이코스 사용자가 비슷하게 나타났다고도 주장했다.

#2. 하루 뒤인 11월 15일, 담배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UC샌프란시스코대학(UCSF) 스탠튼 글란츠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상반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90일간 일반 담배를 피운 사람과 아이코스를 사용한 사람을 대상으로 ▲백혈구 수치 ▲혈압 수준 ▲폐 용량 등 24개 항목을 조사했더니, 23개 항목이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를 근거로 “아이코스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 담배와 거의 비슷하다”고 밝혔다.

▲ 아이코스의 유해성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유해물질 발생량과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근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헬스조선DB

상반된 주장이지만, 근거 자료의 출처는 동일하다. 글란츠 교수의 발표는 필립모리스가 스스로 미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한 자료를 재인용한 것이다. 같은 자료를 가지고 한 쪽에선 아이코스 사용자와 금연자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쪽에선 아이코스 사용자와 일반 흡연자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필립모리스 측은 두 주장 모두 틀리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유해물질 노출량이 기존 담배보다 적은 점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기존 담배와 거의 차이가 없는 점도, 같은 연구에서 확인됐다는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유해물질 발생량’이 아니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유해물질을 얼마나 발생시키는지는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필립모리스 측 연구에서는 기존 담배보다 유해물질이 90~95% 적은 것으로 측정된 반면, 일본 후생노동성 연구에서는 40~60% 적은 것으로 측정됐다. 스위스 베른대 연구에서는 유해물질별로 차이가 컸다. 아세트알데히드(22%)·아세톤(13%) 등은 기존 담배의 절반 이하 수준이었고, 아크로레닌(82%)·포름알데히드(74%)는 기존 담배와 비슷했으며, 아세나프텐(295%)은 오히려 3배 많이 검출됐다.

필립모리스를 비롯한 담배회사들은 궐련형 전자담배 속 유해물질이 기존 담배보다 적다는 점을 근거로 몸에 덜 유해하다고 광고한다. 그러나 ‘유해물질이 적다’는 말을 과연 ‘몸에 덜 유해하다’는 말로 해석해도 될까. 전문가들은 이런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은 별개의 문제이며,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히 알려면 족히 5~10년간은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와 일반 흡연자를 같은 조건에서 장기간 추적 관찰해야 한다. 출시된 지 겨우 3년째인 궐련형 전자담배의 경우 이런 연구결과가 없다.

◇유해물질 흡수량 절반으로 줄었지만 사망률은 ‘그대로’

유해물질이 적으면 당연히 덜 해로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됐다. 유해물질 노출량이 절반으로 줄어도 사망률은 그대로라는 연구결과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연구진은 흡연량을 절반 이하로 줄인 흡연자 2만여 명을 31년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흡연량을 줄인 흡연자들은 폐암 발병 위험이 27~5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망률은 전혀 줄어들지는 않았다. 같은 연구진이 동일한 대상의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폐암으로 인한 사망은 물론 호흡기질환,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 중 어느 것도 감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사망률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진은 “완전히 금연했을 때의 건강 이득은 매우 크지만, 흡연량을 절반 이하로 줄였을 때의 이득은 그리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 한국에서 지난해 출시된 아이코스. 담배회사는 태우는 방식이 아니라 찌는 방식이기 때문에 유해물질이 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필립모리스 홈페이지

◇“유해물질 적다”는 주장의 함정

그런데 ‘유해물질이 적다’는 담배회사의 주장은 어딘가 낯이 익다. ‘저(低)타르 담배’를 홍보하던 때와 비슷하다. 흡연이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가 잇따르자, 담배회사들은 앞 다퉈 ‘Light’ ‘Mild’ 등의 이름이 붙은 저타르 담배를 출시한 바 있다. 타르 함량이 6~10mg인 기존 담배와 달리 0.1~1mg으로 적다고 광고했다.

엄밀히 따져 ‘라이트’나 ‘마일드’라는 이름이 붙은 담배에 포함된 유해물질이 더 적었던 것은 아니다. 필터 부분에 공기구멍을 더 많이 뚫어놔 공기가 더 많이 유입되게 하고, 이로 인해 몸에 들어오는 타르의 양을 줄였던 것이다. 당연히 몸에 들어오는 니코틴의 양도 기존 담배보다 적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저타르 담배는 결국 실패했다. 흡연이라는 행위는 니코틴 중독에 의한 것으로, 몸에서 원하는 니코틴의 양은 일정하다. 이를 위해 흡연자는 담배를 더 자주 피우거나 담배연기를 더 깊게 들이마시는 방법으로 니코틴량을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흡연자가 건강에 덜 해롭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줬을 뿐,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비슷하다는 결론이 났다. 결국 정부는 ‘라이트’ ‘마일드’ 표기를 금지했다.

◇다른 유해물질 0%라도 니코틴만으로 ‘위험’

담배회사는 “궐련형 전자담배는 저타르 담배와 다르다”고 재반박한다. 저타르 담배가 타르·니코틴 모두를 줄인 담배라면, 궐련형 전자담배는 니코틴은 거의 그대로이면서 타르를 포함한 유해물질만 줄였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아이코스 속 니코틴 양은 기존 담배와 거의 비슷하다. 이는 필립모리스 측도 인정한다. 필립모리스 자체 연구에서 아이코스 속 니코틴 양은 한 개비당 1.14㎎로, 기존 담배(1.86㎎)와 큰 차이가 없게 나왔다.

니코틴은 흔히 의존성을 높이는 중독물질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 자체로 독성물질이다. 설령 유해물질이 전혀 없는, 순수한 니코틴만 있는 담배라도 몸에 해롭다는 의미다. 니코틴이 몸에 흡수되면 심장과 혈관이 큰 타격을 받는다. 아드레날린 호르몬이 분비돼 말초혈관이 수축, 혈압이 상승한다. 미국 UC샌프란시스코대학 연구에서 니코틴은 심장 박동을 분당 10~20회 늘리고, 혈압을 5~10㎜Hg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는 니코틴이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말초동맥질환 ▲조산 ▲자연유산 ▲위궤양 ▲식도역류 등을 유발한다고 인정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하루 단 한 개비의 담배만 피워도 협심증·심근경색 위험이 1.3배로 높다는 보고서를 2010년 발표했다.

◇FDA 자문위의 판단 “유해물질 적지만, 질병 위험 줄어들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미 FDA 담배제품 과학 자문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흥미롭다. 자문위는 지난 1월 아이코스에 대해 “유해물질 노출량은 기존 담배보다 적지만, 흡연 관련 질병의 위험을 줄이지는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우선 ‘담배 대신 아이코스를 사용하면 유해하거나 유해할 수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신체 노출이 현저하게 줄어드는가(significantly reduces body’s exposure to harmful or potentially harmful chemicals?)’라는 질문에 자문위원 9명 중 8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담배 대신 아이코스를 사용하면 담배와 관련된 질병의 위험이 줄어드는가(reduce the risks of tobacco-related diseases?)’라는 질문에는 반대로 8명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나머지 한 명은 ‘그렇다’가 아닌 기권이었다.

‘담배 대신 아이코스를 사용하면 덜 유해한가(switching completely to IQOS presents less risk of harm than continuing to smoke cigarettes?)’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5명이 덜 유해하다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답했으며, 4명은 덜 유해하다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다만, 자문위원들은 기존 흡연자들이 아이코스 사용자로 완전히 전환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봤다. 기존 흡연자가 아이코스를 사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7명이었고, 2명은 보통이라는 의견을 냈다. 아이코스와 기존 담배를 동시에 사용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높다는 의견이 3명, 보통이라는 의견이 5명, 낮다는 의견이 1명이었다.

이를 종합해 자문위원들은 필립모리스가 아이코스를 ‘덜 위험한 담배’로 판매해선 안 된다는 결론을 냈다. 이 의견은 만장일치였다. 필립모리스는 FDA에 ‘유해성을 감축한 담배 제품’으로 아이코스의 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자문위원회 회의 결과는 FDA의 최종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