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진(協診)하는 의사
한양대병원 파킨슨병클리닉 김영수·김희태 교수
환자 한 명이 여러 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거나, 하나의 질환이지만 다른 진료과 의사와 함께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이때는 관련된 의사 여럿이 함께 진료·치료하는 ‘협진(協診)’이 환자에게 바람직하다. 협진은 병원과 의사 입장에서 번거롭고, 수익에도 도움이안 된다. 그래서 협진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의료 행위다. 헬스조선은 성공적인 협진으로 환자의 건강을 되찾아주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일곱 번째 주인공은 파킨슨병 환자의 진단·치료를 함께 관리하는 한양대병원 ‘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클리닉’의 신경외과 김영수 교수, 신경과 김희태 교수다.
※파킨슨병이란?
뇌의 흑질(黑質) 부분에 분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줄어드는 병이다. 알츠하이머치매, 뇌졸중과 함께 3대 노인성 뇌질환으로 꼽힌다. 나이가 들수록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손발 떨림, 몸 뻣뻣함, 심한 잠꼬대, 후각·미각저하 등이 주된 증상이다.
강추위에 눈이 제법 쌓일 정도로 내리던 2월의 어느 날, 한양대병원의 빈 회의실에서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두 의사를 만났다. 진료가 막 끝났다며 마지막으로 합류한 김희태 교수와,먼저 와서 기다리던 김영수 교수다. “어떤 사이냐”라고 물으니 두 사람은 씩 웃으며 “과는 다르지만 같은 병 치료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헬스조선 두 분은 함께 파킨슨병 환자를 치료한 지 오래된 걸로 압니다.
김희태 교수 2005년부터 같이 봤으니, 15년이 넘었네요. 과거 파킨슨병 환자는 약물로만 치료했습니다. 그런데 약물치료를 하다보면 부작용을 보이는 환자가 나타납니다. 이런 환자는 약을 써도 약효가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나타나 파킨슨병 증상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습니다. 파킨슨병을 오래 봐 온 의사라면 알 수 있어요. 떨림이 생기는 건 약효가 부족한 것이고, 심하게 몸을 흔들면 약효가 과하게 나타나는 식이죠. 보통 약물치료 3~5년 후면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신경과 의사가 처방해준 약이 안 듣는 경우, 신경외과에서 하는 치료법을 쓸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00년경부터 도입됐죠. 덕택에 본격적으로 협진을 시작했습니다.
헬스조선 신경외과에서 하는 파킨슨병 치료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
김영수 교수 ‘뇌심부자극술(DBS)’입니다. 문제가 있는 뇌 영역을 찾아 신경전달물질의 상태를 알아내고, 전극을 심어 전기 자극을 줘 정상 뇌처럼 작동하게 하는 치료법이죠. ‘심부’는 뇌의 한가운데를 말해요. 몸의 움직임 자체는 대뇌피질(뇌의 가장 표면)에서 담당하지만, 이 움직임을 세밀하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일은 심부가 담당합니다. 뜨개질을 하거나, 피아노를 치는 것 같은 유연한 행동을 제어하죠. 파킨슨병환자는 도파민이란 신경전달물질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심부에 브레이크가 걸려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뇌심부자극술을 받으면 뇌 속에 심은 전극에서 1~3볼트 정도로 약한 전류가 나오고, 이 전류가 도파민의 역할을 대신해 환자 증상을 나아지게 합니다. 전류라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몸은 원래 전류가 흐르며, 세포와 세포 사이 신호가 전달될 때 전기의 힘이 필요합니다.
헬스조선 협진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요.
김희태 교수 먼저 신경과나 신경외과에서 파킨슨병 환자를 받습니다. 신경과는 약물치료, 신경외과는 수술치료에 특화돼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경과에서 약으로 증상 조절을 합니다. 조절을 해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거나, 부작용이 심해 환자가 불편할 때 뇌심부자극술을 합니다. 약물 부작용 중에는 환각이나 환청도 있습니다. 약을 먹고 불편하다면 약물을 중단하고 수술을 고려할 수밖에 없죠. 여기서 신경외과 선생님과 언제까지 약을 쓰고, 어느 시점에 수술해야 환자에게 가장 좋을지 함께 판단합니다. 환자에게 맞는 시기를 잘 잡아야 약물 부작용도 덜하고, 수술 후 경과도 좋습니다. 수술이 효과 있을지 여부도 함께 판단합니다. 수술 시기가 부적절하거나, 수술을 해봤자 큰 호전이 없을 것 같은 환자는 본인이 수술을 원한다 해도 ‘효과가 없다’고 알려줍니다. 이렇게 되면 환자는 필요 없는 수술을 피할 수 있습니다.
김영수 교수 수술에 대한 시기를 판단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의사 한 명이 고민하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 고민하는 게 나아요. 저 같은 외과 의사는 환자를 봤을 때 바로 수술부터 떠올리게 되거든요.
김희태 교수 우리 병원에서는 파킨슨병 환자를 같이 볼 때 김영수 교수님과 제가 같은 날 진료를 잡습니다. 전화나 메신저, 병원 차트, 사내 시스템으로 미리 연락해 날을 잡죠. 수술해야 할 시기가 된 환자는 함께 상황을 본 뒤 따로 만나 논의하고, 수술을 받은 환자는 김영수 교수님이 먼저 본 뒤 저에게 들러 약을 타가는 식입니다. 수술한 뒤에는 약물을 적게 씁니다. 그만큼 호전이 되었다는 소리죠. 평균 3분의 1 정도 용량이나 빈도가 줄어듭니다.약물을 끊는 분도 있고요.
헬스조선 협진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김영수 교수 환자를 최적의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파킨슨병 환자를 봤을 때 치료법으로 수술부터 떠올리지만, 수술을 무조건 빨리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적기가 있어요. 김희태 교수님이 환자에 대한 최적의 시기를 무척 잘 보세요. 시기에 대해서 교수님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편입니다. 저는 외과 의사니 그만큼 수술에 힘쓰고요.
김희태 교수 김영수 교수님은 수술을 잘 해요. 어쩜 그렇게 깔끔하게 빨리 끝내는지 모르겠어요. 손도 머리도 빠른 거죠. 같은 수술을 하는 다른 의사에 비해, 수술 시간이 3분의 1 정도면 끝납니다. 수술이 잘 됐는지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실패한 걸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유명하시겠죠. 환자들이 항상 고맙다고 해요. 협진한 보람을 느낍니다. 물론 수술 수가는 저쪽이 다 가져가지만(웃음).
김영수 교수 이것 참, 할 말이 없네요(웃음). 어쨌든 이렇게 협진을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는 건 서로 믿음이 있어서겠죠. 저는 김희태 교수님의 약물치료, 수술 시기 판단을 믿고 김희태 교수님은 제 수술을 믿습니다.
헬스조선 함께 치료한 환자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요.
김영수 교수 60대 남자 환자가 기억에 남네요. 원래 손 떨림 증세로 오랫동안 고생하셨는데, 해당 지역에 있는 병원에서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여러 사람에게 물어 한양대병원으로 오셨어요.
김희태 교수 처음 상담할 때 손발 떨림은 물론 몸이 불편하고 우울해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하셨죠. 파킨슨 척도검사와 뇌 MRI, PETCT 등을 해 보니 파킨슨병이 확실했습니다. 바로 약물치료를 시작했고 증상이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5년간 약물로 증상을 조절했어요. 5년이 지나니 약을 먹어도 환자는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본업인 농사는 물론 보행도 쉽지 않았어요. 뇌심부자극술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 내렸죠.
김영수 교수 논의한 끝에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평소 병원을 오가며 동행한 환자의 가족이 뇌심부자극술을 받은 환자를 많이 봐온 덕택에 수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신경외과에 입원했고, 최근 수술을 받았죠. 수술 후 환자는 무척 만족했습니다. 걸음걸이, 떨림, 몸 굳는 현상이 현저히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지방에서 다시 농사지으며 잘 지내십니다. 다른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환자가 건강해지면 뿌듯하고 기억에도 남습니다.
헬스조선 협진이 광범위해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김영수 교수 의사가 먼저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다른 과의 의사가 결과를 봤을 때 ‘참 잘한다’고 생각이 들면 신뢰가 저절로 생기고 믿게 되어 있습니다.
김희태 교수 그렇습니다. 실력이 안 좋으면 내 환자 어떻게 보내겠어요? 저 역시 수술 결과가 좋으면 자연스럽게 신뢰가 생기고 믿고 맡기게 돼요. 믿음이 없다면 파킨슨병 환자를 신경과 의사는 신경과에서만 보려고 하고, 신경외과 의사는 신경외과에서만 보려고 하겠죠. 이렇게 되면 크로스체크(cross-check)가 안 됩니다.
김영수 교수 우리 병원에서는 신경외과 수술에 신경과가 들어와서 반응도 보고 그럽니다. 직접 수술하는 건 아니지만, 자극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등 환자 상태를 알아야 하니 들어오는 거죠. 환자를 위해 서로 다른 방면에서 의견을 내기 위한 수단입니다.
김희태 교수 힘든 점도 있습니다. 여러 진료과가 한 명의 환자를 함께 봐야 하니 상대적으로 시간도 부족하고, 진료나 수술 스케줄을 잡기도 어려워요. 파킨슨병 같은 병은 해당 분야의 전문 간호사가 있으면 환자 관리에 큰 도움이 됩니다. 코디네이터 개념으로요. 그러나 이런 인력을 도입하기 쉽지 않죠. 협진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더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