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주치의
고난도 수술로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는 의사만이 ‘명의(名醫)’일까. 평범한 사람들이 앓는 평범한 병을 잘 관리해 대형병원의 수술실을 찾지 않도록 하는 의사도 명의라는 칭호를 얻기에 충분하다. 99%의 환자를 현장에서 돌보는 우리 동네 숨은 명의를 만나본다. 두 번째로 만난 의사는 경기도 안산의 새안산상록의원 김철환 원장이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음씨 좋아 보이는 신사가 기자를 반긴다. 목에 있는 나비넥타이가 그의 선한 인상을 더 또렷하게 한다. 오래전부터 진료를 볼 때 꾸준히 메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나비넥타이요?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하려고 메고 있습니다. 넥타이 끝에 세균이라도 묻으면 다른 환자에게 전염될 수 있잖아요. 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환자들도 친근하게 생각해주더라고요.”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를 지낸 그는 1년 전부터 교수직을 접고 안산에 동네의사로 자리를 잡았다. 22년간 이어온 교수직을 그만둘 때의 느낌이 시원섭섭할 것 같아 소감을 물었다.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처음 여기 와서 든 생각이 ‘진작 올 걸’ 하는 것이었어요. 좋은 동네의사가 되고 싶어서 의사가 됐는데, 어쩌다 보니 교수를 22년이나 했네요. 마음속으로 언젠가 반드시 동네의사가 되겠다는 소망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평생의 꿈을 이루게 돼서 요샌 정말 행복합니다.”
다소 의아했다. 아무렴 동네의사보다는 교수가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교수와는 맞지 않았던 걸까.
“물론 교수도 장점이 많죠. 그렇지만 제가 담당하고 있는 가정의학과의 경우 대학병원이 아닌 일선 동네의원에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환자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더 자주 만나며 교육·상담을 통해 건강을 관리해주는 것이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동네의사로서 할 일입니다.”
그에게 교수 시절과 비교해 동네의사로서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론을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그는 답했다. 교수로 지내는 동안 이론으로 습득한 동네의사로서의 역할을 직접 현장에서 수행할 수 있어서 즐겁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의원에서는 환자 교육의 일환으로 한 달에 한 번씩 ‘건강수다모임’, 줄여서 ‘건수모’를 하고 있습니다. 고혈압·당뇨병·예방접종·갱년기증상·금연 등 흔한 질환을 주제로 환자와 의사가 함께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건강강좌처럼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15~20명이 둥그렇게 앉아 말 그대로 함께 수다를 떨죠. 같이 여행도 다녀오고요. 교수 시절에는 이론으로만 접했던 모임입니다. 이제는 실제로 할 수 있게 됐어요.”
사실 이런 모임은 모든 구성원이 끝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자신과 관련 있는 질환이 주제일 때만 모임에 참여하기 쉽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구심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건강수다모임은 벌써 6기째 운영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새안산상록의원이 평범한 의원이 아닌 ‘의료생활협동조합’이라는 점이 있다.
새안산상록의원은 안산 지역 조합원 5000여 명이 출자해 지어진 의원이다. 조합원에게는 몇 가지 혜택이 따른다. 건강수다모임 역시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서비스다. 조합원들은 보통 모임보다 강력한 소속감으로 건강수다모임에 참여한다. 적극적인 참여는 더 나은 치료효과로 이어진다.
“금연을 예로 들면, 금연 성공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금연 ‘붐’을 만드는 것입니다. 금연자끼리는 서로 의지를 북돋우고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친구·동료의 응원과 격려도 금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전국적인 붐은 아니지만, 이런 작은 사회 단위에서의 붐도 금연 성공률을 높입니다. 협동조합이 노리는 바이기도 하죠.”
그는 내로라하는 금연 주치의다. 현재 한국금연운동협의회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새해를 맞아(기자가 새안산상록의원을 방문한 것은 지난 1월 둘째 주였다) 그에게 금연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금연을 치료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의사를 찾아 금연 상담을 하세요. 주위에서 들리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억지로라도 의사와 만나 왜 담배를 못 끊는지, 담배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상담하고 나면 금연 성공률이 실제로 더 높아집니다. 끊기가 정 힘들다면 금연치료제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요.”
금연운동협의회 부회장답게 그는 담배와 관련해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저는 흡연자를 ‘담배회사에 낚인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흡연자는 잘못이 없어요. 흡연자를 유혹한 담배회사의 잘못이죠. 요새 논란인 가열식 전자담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흡연자를 이해해야 합니다. 동네의사이자 금연주치의로서 그들을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응원해 금연 성공률을 높일 것입니다.”
김철환 원장에게 마지막으로 동네의사로서 스스로를 몇 점이라고 평가하는지 물었다. 자신만만하게 ‘90점’이라고 답했다.
“동네의사의 실력은 의학적 지식뿐 아니라 사람을 좋아하는 정도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동네 환자들과 가깝게 지내며 함께 즐기고 아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사람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실력 있는 동네의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