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 네비올로 이야기

글 김동식(와인칼럼리스트)|2017/08/12 09:00


‘안개를 먹고 자란다’는 네비올로(Nebbiolo).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방,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 등지에서 재배되는 포도 품종이다. 늦가을 수확에 나서는 만생종으로, 껍질이 얇고 포도 알 굵기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네비올로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피노 누아처럼 대부분 단일품종으로 양조한다. 병충해에 약하고, 수확량도 적어 농민들이 재배를 꺼린다고. 그러나 과실향이 섬세하고 산도와 당도, 타닌 등 구조감이 좋아 이탈리아 최고급 명품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네비올로 와인을 잔에 따르고 일단 기다려야 합니다. 변화를 느끼면서 천천히 마시는 것이 정답이죠.” 미쉐린 2스타를 받은 한식당 ‘권숙수’ 한욱태 소믈리에의 설명이다. 네비올로는 한마디로 ‘기다림’이 필요한 와인이라는 것. 한 소믈리에는 “워낙 강한 와인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과일향과 타닌 맛이 아주 서서히 올라오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진정한 네비올로의 맛을 알 수 있다는 의미다.



2013년 빈티지는 ‘철부지 어린 왕자’
국내 수입 네비올로 중 가장 대표적인 와인으로 피오 체사레 와이너리의 ‘바롤로’와 ‘네비올로 랑게’를 꼽을 수 있다. 두 와인 모두 밝은 루비 컬러와 체리, 제비꽃 아로마 등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지난 6월 오너 겸 와인메이커 피오 보파(Pio Boffa) 초청으로 테이스팅 기회를 가졌다. 먼저 ‘피오 체사레, 바롤로(PioCesare, Barolo D.O.C.G)’ 2013년산부터 시작했다. ‘바롤로의 기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 와인을 잔에 따르자 아래로 떨어지는 컬러가 밝고 곱다. 선홍색에 마음 설렌다. 이어 상큼한 딸기 등 특유의 과일향이 유혹하지만 잠시 기다리는 것이 좋다. 성급하게 한 모금 마셨다가 까칠하고 딱딱한 느낌의 타닌 맛이 실망감만 안겼다. 향과 전혀 상반되는 맛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와인 전문가들은 흔히 바롤로를 ‘와인의 왕’이라 부르지만 2013년 빈티지는 아직 ‘철부지 어린 왕자’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실제 이탈리아 바롤로 와인은 법적으로 최소 3년(배럴 2년, 병 1년) 이상을 숙성해야 판매할 수 있다. 바롤로 리제르바급은 5년 이상 숙성시키도록 정해놓고 있다.

다행히 볼이 넓은 부르고뉴잔을 사용해서 그런지 시간을 두고 마시자 네비올로의 진가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달콤한 과일향에서 끝 무렵에는 마른 낙엽과 흙, 심지어 초콜릿 냄새까지 잡을 수 있었다. 좀더 집중하자 섬세하고 촘촘하게 느껴지는 타닌감과 함께 호두, 아몬드의 풍미에 빠진다. 물론 바롤로에서 생산된 네비올로 100%로 생산된 와인이다. 알코올 도수는 14.5%로 높은 편이다. 스테이크, 버섯요리와 먹으면 더욱 맛있다고 한다. 서빙 온도는 16~18℃.



진가 알려면 천천히 마셔야
다음은 ‘피오 체사레, 네비올로 랑게(Pio Cesare, Nebbiolo LangheD.O.C)’다. 이 와인 역시 피에몬테 랑게 5개 지역에서 자란 네비올로를 24개월 오크 숙성한 후 병에 담았다. 2014년 빈티지로, 다소 어리지만 유리잔에 비친 석류석 색은 바롤로 와인보다 약간 더 짙은 편이다. 초반에는 역시 신맛이 강하다. 떫은 타닌에 입이 바짝 마를 지경이다. 그러나 집중하면 블랙베리향이 약하게 올라온다. 시간이 지나면 잘 익은 자두, 체리와 함께 살짝 퍼지는 장미향은 물론 부드러운 타닌과 달콤한 바닐라 풍미를 잡을 수 있다.

피오 체사레는 이탈리아 최고 와인산지 중 하나로 꼽히는 피에몬테 지역에서 4대에 걸쳐 135년째 경영을 이어온 와이너리다. 바롤로와 바르바 레스코 마을에 총 70ha(약 70만㎡)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연간 48만 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피오 보파(Pio Boffa) 대표는 “네비올로 와인을 마실 때는 반드시 음식을 곁들이고, 친구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마셔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바르바레스코는 ‘왕비의 와인’
한편 바롤로가 ‘왕의 와인’이라면 바르바레스코는 ‘왕비의 와인’으로 통한다. 이는 강렬한 타닌과 강한 느낌의 바롤로와 달리, 바르바레스코는 타닌이 부드럽고 향이 풍부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네비올로는 기후와 일조량, 토양에 매우 민감한 품종이다. 바롤로가 석회질과 사암 등 척박한 토양으로 이뤄져 강건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반면 바르바레스코는 좀더 비옥한 토양으로 가볍고 부드러운 타닌을 구현할 수 있다. 바르바레스코 대표 와인으로는 가야 와인 삼총사, 이른바 소리 산 로렌조(Sori San Lorenzo), 소리 틸딘(SoriTildin), 코스타 루시(Costa Russi)를 꼽을 수 있다. 이 중 맏형 격인 소리 산 로렌조는 자두향과 딸기향이 강한 와인으로서 묵직한 타닌감과 긴 여운이 특징이다. 섬세한 느낌과 부드러움이 바롤로 와인과 차이 나는 부분이다. 모임을 끝낼 즈음에 가죽과 시가향을 잡을 수 있다.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국제 와인전문가 자격증(WSET Level 3)을 보유하고 있다. ‘와인 왕초보 탈출하기’ 등 다수의 와인 칼럼을 썼다. 서울시교육청 등 에서 와인 강의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