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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의심되면 재빨리 의무기록부터 확보하세요”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 사진 김지아 기자
입력 2016/07/10 09:30
의료소송 전문 이인재 변호사에게 듣는 의료사고 대처법
의사 앞에서 환자는 한없이 작아진다. 이는 의료사고가 의심될 때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의학 지식이 부족한 환자가 의사의 잘못을 입증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환자들을 돕는 데 발 벗고 나선 변호사가 있다. 법무법인 우성의 이인재 변호사다. 그에게 의료사고의 현황과 대처법에 대해 물었다.
이인재 변호사
환자가 병원을 대상으로 제기하는 소송의 승소를 돕는 법무법인 우성 소속의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약 3년6개월간은 서울대병원·아산병원·삼성의료원 같은 국내 대형 병원의 입장을 대변했지만 이후로는 병원을 대상으로 환자를 변호하고 있다. 환자를 변호한 지 12년 정도 됐고, 그간 담당한 의료소송 건수는 500건이 넘는다.
뉴스에 보도되는 의료사고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들었습니다. 실제 국내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는 얼마나 흔합니까?
법원에서 다뤄지는 의료소송 건수는 연간 1000~1200건 정도입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한 해 진행되는 사건수는 900~1000건, 한국소비자원에서 같은 기간 접수되는 사건수 역시 1000건 정도예요. 물론 상담수는 몇만 건으로 훨씬 많습니다. 이밖에 보험회사를 통해 당사자끼리 처리하는 것이 1500건 정도고요. 이렇게 사건화되는 의료분쟁만 살펴봐도 1년에 4500건 정도 된다고 볼 수 있어요.
의료사고에서 환자가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증거를 많이 확보해 증명할 수 있는 쪽이 병원이기 때문이죠. 의료행위를 하고 그걸 기록하는 게 의사가 하는 일이니까요. 여기에 환자가 관여할 수는 없어요. 진료기록의 진실성과 신빙성만 보장되면 사실 환자가 지금처럼 극단적인 약자는 되지 않을 겁니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사고가 났는데 기록이 안 남는 거죠. 혹은 기록이 사실과 다른 거요. 의사가 마음먹고 기록을 조작하거나 폐기하면 환자 입장에서 아무리 억울한 의료사고라도 승소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 들어 의사가 의무기록을 수정하는 게 더 쉬워졌어요. 과거에 직접 손으로 작성할 때는 고쳐 쓴 것이 티가 나고 이를 이용해 즉각적인 항변이 가능했어요. 그런데 2003년부터는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을 도입했거든요. 이 시스템에는 의무기록이 언제 누구에 의해 수정됐는지 기록이 남아요. 하지만 이 기록을 환자 측에서 법적으로 요구할 권리가 없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를 법원이 강제로 확인할 권리도 없어요.
병원을 대상으로 하는 소송은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있는데요.
과거에는 의료사고가 나면 이를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병원에서 사망하는 것은 죄다 의료사고로 의심할 정도로 환자들의 주장이 세졌죠. 드라마나 뉴스 등에서 의료사고 이야기가 많이 다뤄져서 그런 것 같아요. 의료 관련 전문변호사들이 생기다보니 법원에서 한 해 다루는 1000여 건의 의료소송 중 600건 정도는 조정이나 화해 판결로 손해배상 금액이 일부라도 지급되고 있습니다.
의료사고가 의심될 때 환자의 현명한 대처법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사건 발생 후 신속하게 의무기록을 확보하는 거예요. 아쉬운 게 있으면 숨기고 싶은 게 사람의 본성이에요. 그 틈을 주면 안 되는 거죠. 사건이 생긴 날 혹은 그 다음날이라도 의무기록을 재빨리 복사해놔야 돼요. 그리고 중요한 건 다양한 의무기록 종류를 빠지지 않고 확보해야 한다는 겁니다. 의무기록지는 병원마다 명칭이 다르지만 대략 25가지 정도가 있어요. 특히 중요한 것은 의사지시서, 경과기록지, 간호기록지, 초진과 재진 시의 외래기록지, 응급실기록지, 수술기록지, 마취기록지, 혈액검사결과지예요. 의무기록실에서 의무기록 사본을 받으면서 더 이상의 추가 진료기록이 없다는 사실 확인서를 요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 확인서를 안 써주면 빠진 게 있는 거예요.
의무기록을 확보한 뒤에는 사고 경위서를 쓰세요. 환자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을 시간 순서대로 작성하면 돼요. 의사의 기록은 의사의 관점으로 쓰이기 때문에, 환자가 특정증상을 호소했는데 그게 기록 안 됐을 수 있어요.
세 번째는 전문가한테 상담받는 거예요. 의사의 과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거든요. 또 사건의 쟁점을 정리하는 게 중요해요. 이를 통해 병원에 내용 증명을 보내 치료비와 위자료 지급을 요청할 수 있죠. 그래도 합의에 응하지 않으면 법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한국소비자원 등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으세요.
환자 입장에서 의료사고를 최대한 막으려면요?
제가 강의 나갈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첫째는 주말에 아프지 말라는 거예요. 주말에는 병원에 가도 전문의가 없는 경우가 많아 사고위험이 높아져요. 전문의가 아니면 의술의 숙련도가 떨어지니까요.
또 환자는 자신의 증상과 과거력을 의료진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해요. 과거력이란 어떤 약물을 복용했고, 어떤 질환이 있는지 등을 말합니다. 환자와 의료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면 사고 위험성이 낮아지죠. 의사를 포함해 간호사한테도 증상을 자세히 얘기하는 게 좋아요. 미숙한 의료진은 증상을 정확히 말해주지 않으면 빨리 대처하기보다는 혈액검사, CT촬영을 하는 등의 중요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하다가 복막염이 진행되고 결국 심각한 패혈증으로 악화될 우려도 있어요. 또 복통에서 흉통으로 증상이 바뀌는 등 느껴지는 증상을 의료진에게 세세히 전달해야 돼요. 이때는 의료진이 진료과를 바꿔서 검사를 진행해야 하니까요.
시술은 수술보다 안전해 쉽게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필러주입술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안면부에 필러주입술을 하다가 실명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해요. 대한안과학회에서는 이로 인해 안면부에 함부로 필러를 주입하지 말 것을 권장하는데,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는 쉽게 시행하는 편이죠. 하지만 필러가 망막 내 동맥을 타고 들어가 혈관을 막아버릴 수 있고, 그 때문에 실명이 되는 겁니다. 필러주입술로 인한 실명으로 제가 직접 소송을 준비한 케이스가 5건이고, 학회지에 사례로 실린 케이스가 17건 정도예요. 지금까지 이런 사고가 총 20건이 넘게 일어났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주의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