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의 ‘남자의 자격’ 코너에서 MC 이경규는 ‘끝까지 꾹 참자’라는 주제로 명강의를 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경규는 후배들에게 버럭 소리치는 습관 때문에 이윤석을 비롯한 윤형빈과 김성민이 제일 두려워하는 선배이기도 하다. 이처럼 ‘버럭’의 대명사인 이경규가 ‘인(忍)’을 주제로 강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웃음을 자아냈지만, 그는 곧 진솔한 경험담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이경규는 “울화통이 터질 때마다 참지 못하고 그때그때 후배들의 말을 자르고 질책했더니, 결국엔 후배들은 물론 PD와 작가, 프로그램까지 전부 자신을 떠나갔다”며 "사랑받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참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경규의 말처럼 쌓이는 대로 터뜨렸다간 사회에서 왕따되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참고 사는 것도 속병 들게 만드는 화(火)…. 그 분출의 테크닉을 알아봤다.
◆ 화, 적절히 해소 못하면 두통, 어지럼증, 무기력증 생겨
무조건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억울한 감정이나 분노를 적절한 방법으로 그때그때 해소해 주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면 화병(火病)이 생기기 때문이다. 화를 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로인해 몸에 남겨진 화를 내보내는 적절한 방식을 찾는 것 역시 중요하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4.3%는 화병을 겪고 있다. 화병은 화(火)를 오래 가슴에 담아두고 해소하지 못할 경우, 가슴이 답답하거나 화끈거리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정신적 증후군이다. 화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쌓아두면 가슴 한가운데인 '옥당'에 기운이 뭉쳐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문병하 광동한방병원 대표원장은 “화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면 혈액순환이 안 돼 두통이 생기고 어지럽거나 무기력증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뿐만 아니라 화를 쌓아두면 뇌에서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 아드레날린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Cortisol) 분비량이 늘어나서 불안감과 공격성도 커지게 된다.
◆ 화(火), 어떻게 분출하는 것이 현명할까
화병은 환자를 둘러싼 여러가지 스트레스 상황이 장기간에 걸쳐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한다. 특정한 하나의 심리적 충격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직접적인 치료가 힘들다. 따라서 화병이 발병하기 전에 간접적으로 화를 방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다.
문병하 원장은 “축구나 복싱, 테니스처럼 활동량이 많은 운동으로 응축된 화와 공격성을 배출할 수 있으며, 이 때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사람의 도움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족 간의 대화를 통한 공감과 이해의 작업은 분노를 충분히 발산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산에 올라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억울한 심정을 글로 써 보면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스트레스를 담아두지 말고 믿을 만한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감정을 나누는 것도 임시방편이 될 수 있다.
스스로 화를 다스리기 힘들면 정신과의 인지행동요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상담하는 의사가 다양한 부당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의응답을 하는 방법을 쓴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본인이 회사에 많은 공을 세웠는데 보상은 다른 사람한테 돌아간 경우, 타인의 과실로 교통사고가 나서 가족 중 누군가가 사망한 경우 등을 상상한 다음 가상(假想)의 화를 다스려 봄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슬기롭게 처리하는 방법을 미리 배워두는 것이다.
◆ 묵은 화병은 어떻게 치료할 수 있나
이유 없이 짜증나고 화를 억누르기 힘든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가슴이 화끈거리고 답답한 느낌이 2주 이상 계속되면 병원에서 상담치료, 약물치료, 침·뜸치료 등을 받을 수 있다. 약물치료는 뭉친 기운을 풀어서 기를 순환시키는 이기약(理氣藥)이나 열을 떨어뜨리는 청열약(淸熱藥) 등을 배합해 2개월 이상 처방한다. 침과 뜸은 가슴 중간의 전중혈 등 경혈을 자극해 기의 순환을 촉진하고 자율신경을 조절해 일시적으로 생긴 화를 내린다. 문병하 원장은 "가슴이 답답할 때 전중혈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기를 소통시켜 답답함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