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서 산부인과 의사라고 소개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묻곤 한다. 과연 어떤 사람이 아들을 잘 낳고, 딸을 잘 낳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해답’을 듣고 싶은 표정이지만 그건 정말 의사인 나도 궁금한 부분이다.
영국의 통계를 보면 나이가 많은 부모는 딸을 많이 낳고, 부모의 인종이 서로 다르거나 풍요로운 가정에서는 아들이 더 많이 태어난다고 한다. 또 담배를 하루에 20개비 이상 피우는 남성은 딸을 많이 낳는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은 아들을 낳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현모양처 같은 수동적인 여성은 딸을 많이 낳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속설일 뿐이고 과학적인 연관성은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태어날 새끼의 성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성별의 결정에 있어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중에 떠도는 성별 골라 임신하는 법에는 뭐가 있을까?
배란 훨씬 전에 성관계를 해라?
미국의 한 의사는 ‘성별을 골라 임신하는 법’이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해 돈방석에 올랐다. 그 의사의 주장은 크기가 작은 Y염색체를 담은 정자는 빈 수레같이 빨리 헤엄치고, Y염색체보다 큰 X염색체를 담은 정자는 무거운 수레처럼 느리게 헤어진다는 것이다.
배란 직전 혹은 직후에 성관계를 하면 사정된 정자가 난자를 향해 헤엄쳐 가는 동안 난자는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당연히 빨리 헤엄치는 Y염색체를 가진 정자에 의해 수정이 될 것이므로 아들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또 배란 훨씬 전에 성관계를 하게 되면 난자가 배란되는 순간 이미 모든 종류의 정자가 다 근처에 모여있을 것이므로 아들을 낳을 확률이 50%라는 황당한 가설을 담고 있다. 일견 솔깃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X염색체와 Y염색체 무게 차이는 너무나 미미해서 전혀 근거가 없다.
성별의 여성의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여성의 질 환경이 산성이냐 알칼리성이냐에 따라서 자녀의 성이 달라진다는 이론이 있다. 하지만 질은 산성일수밖에 없다. 질 속의 유산균은 질 벽의 영양분을 이용해 발효해 질 속을 요구르트처럼 시큼한 산성이 되게 한다.
질 속이 산성이어야 해로운 잡균을 몰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대장 속의 대장균이 다른 세균을 살 수 없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질 속의 환경이 알칼리가 되면 아들을 낳는다는 잘못된 정보 탓에 많은 여성들이 질을 소다수로 세척하는데 이는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소다수로 질을 세척하다보면 유산균의 위력이 약해져서 해로운 잡균이 득실거리게 된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은 물론이다.
정자가 질 속에 사정되는 순간 마치 하수구에 빠진 것처럼 온갖 세균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면 과연 난자를 만나러 무사히 자궁으로 진입하는 정자가 몇이나 될까. 결국 아들은 커녕 불임과 질염증으로 병원을 찾게 될 것이 뻔하다.